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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by 정재승책리뷰 2020. 4. 19. 19:35
정재승 교수는 나에게 여러모로 친숙한 존재이다. 예전에 정재승 교수님이 집필한 ‘과학콘서트’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있고, 대학에 올라와서는 내가 속해 있던 카이스트 방송부(VOK)의 담당 교수가 마침 정재승 교수님이여서 고깃집에서 밥을 같이 먹기도 하였다. 또, 전역 직후에는 뇌과학에 대한 흥미가 들끓어서 정재승 교수님의 랩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가 학부생들은 안 받는다는 메일을 받기도 하고, 그 후, 학교에서 강연을 연다고 해서 찾아가보기도 해봤다(사실 그때 그 강연이 이 ‘열두 발자국’의 책 싸인을 함께 하는 강연이었는데 거기서 책이 없어 싸인을 못 받은 것이 무척 아쉽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70%이상의 확신이 들면 그냥 하라!”이었다. 마시멜로 챌린지처럼 거의 대부분의 경우 어떠한 일을 계획하느라 많은 시간을 써버리면 그 계획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변수들도 너무 많고 실제로 계획처럼 되는 일이 전무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진부한 클리셰이지만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이다.’ 특히,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에서 나는 항상 목표보다 계획을 중요시해왔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주었다.
흥미로웠던 대목 중 하나는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겁니다.≫이었다. 실제로 정재승 교수님은 가끔 글을 쓸 때 창의성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 문학책에서 단서를 찾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단어들이 뇌에 저장될 때 비슷한 느낌의 단어들이 클러스터를 이루어져 뭉텅뭉텅 저장된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했다. 더 나아가 FMRI를 통해 시각피질로 오는 정보를 이미지화한 사진도 매우 신기했다. 이에 대한 기술이 더 정밀화되면 우리는 어제 꾼 꿈을 영상으로 변환해 동영상으로 다시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최근에 한번 VR과 AR에 대한 붐이 한번 일었다가 다시 시들해졌지만, 이 책을 통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대한 트렌드는 필연적으로 다시 올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교수님은 책에서 Google-glass와 같이 시각정보를 받는 웨어러블 기기가 트렌드를 이끌 것이라고 하였는데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또한, 책에서 정의하는 아톰(현실의 원자) 세계를 비트(가상현실의 정보)세계로 바꾸는 것을 4차 산업혁명의 정의로 내렸는데, 이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유물론을 믿고 있는 나에게 인간과 자신에 대해 깊은 이해를 시작하려면 뇌에 대한 이해도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책과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굉장히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생각보다 얻을 내용이 많아서 긴장하면서 읽었다. 확실히 정재승 교수님은 내용을 독자들에게 쉽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항상 과학의 대중화에 힘써왔던 외국의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파인만과 같은 인물들이 오버랩되었다.
2019년 학교에서 열렸던 정재승 교수님의 강연 포스터. 강연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은 자신이 강연하면 강연장을 꽉 채워주지 않는다며 농담했던 것이 기억에 난다.
책 발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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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 중 하나는 ‘세상에는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구글의 광고 문구를 보고 호기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창의적인 사람들은 아니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호기심 못지않게 놀라운 재능 하나가 또 있습니다. 바로 ‘강한 호기심을 잠시 느꼈으나 이내 그것을 억누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놀라운 억제력’말입니다.
p10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주제는 “뇌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입니다.
p25 <마시멜로 챌린지>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p27
한 번도 세상에 나가 장사를 해본 적이 없는 MBA학생에서 장황한 창업 계획을 세우게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p36<취업보고서에 쓸 것....?> 나는 유전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성성이 강할수록 이런 성향이 더 높아집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손가락 길이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두 번째 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은 인간의 몸 중 성기관을 제외한 기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녀의 비율 차이가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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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회피를 담당하는 뇌 영역(인슐라, insula)이 망가진 환자들은 주식투자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입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수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주식투자를 하거든요.
p38
인간의 뇌는 오늘날 자칫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기 딱 좋게 디자인 돼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약 3만년전의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과 짝짓기에 필요한 선택을 하기 적절한 정도로 진화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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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가 합리적이지 않은 건 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원시부족사회 때 유용했던 전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p38 <70퍼센트 확신이 들면 실행하라>
우리가 가진 적절하지 않은 의사결정 패턴 중 하나는 해야 할 의사 결정을 ‘안 하는’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나이 들어 가장 많이 하는 후회 중 하나가 ‘이거 괜히 했다’라는 후회보다 ‘내가 그때 그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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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안 하느냐. 99퍼센트, 95퍼센트 혹은 최소한 90퍼센트 이상의 확신이 드는 상황이 되어야 고백을 하고, 지원을 하고, 선택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살다 보면 90퍼센트 이상으로 여러 조건이 맞고 확신이 드는 경우는 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확신이 들면 우선 실행에 옮길 필요도 있습니다. 마시멜로 챌린지의 유치원생 전략처럼 말이죠. 일단 한번 만들어보는 거죠. 잘못되었으면 다시 고치면 되고요.
p58
여러분, 혹시 도시에서 길을 읽은 적이 있으세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미친 듯이 돌아다녔더니 그 도시를 잘 알게 되는. 저에게는 바로 그게 인생의 큰 경험이었어요. 우리는 평소 길을 잃어본 경험이 별로 없죠.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60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인 줄 착각하도록 부추기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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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택에 관해 뇌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이 밝혀낸 연구결과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뇌를 찍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저희가 결국 알아낸 거은 ‘유치원생의 마음으로 일단 시도해보라’는 겁니다.
p71
호모 사피엔스는 경제적 이득, 사회적 관계, 과거의 경험, 주의 집중, 편견과 선입견, 도덕과 윤리 등 많은 요소를 두루 고려하고 판단하면서 최종 의사결정을 합니다.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동물이고, 선택을 하는 기준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심지어 그런 기준들이 때에 따라 달라집니다.
p81
결핍이 욕망을 만듭니다. 뭔가 부족해야 그 결핍 때문에 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요. 요즘아이들은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해외에 보내달라고 떼쓰지 않아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가 알아서 해외연수를 보내주죠. 또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고 학원이나 과외를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알아채고 가장 좋은 학원에 데리고 갑니다. 그들은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합니다. 대학 때까지는 부모 품에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에요. 자신만의 지도를 그린 경험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대면할 기회도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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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선택지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한 뒤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인생에서 경험한 선호나 우선순위가 적용됩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할수록 결정이 쉬워져요. 정답은 없지만 사람마다 다른 기준이 존재하지요. 어릴 때부터 늘 부모가 대신 의사결정을 해주고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로 아이가 따라간다면,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돼요.
결정을 내릴 때 몇 가지 팁
* 의사결정에 시간제한을 둬 보자. 마음먹은 그날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의사결정을 잘하려고 애쓰고, 정한 시간이 되면 그때까지 얻은 내 생각과 정보를 토대로 결정을 하는 방법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만드는 것도 결정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죽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진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p102
아이가 게임에 완전히 빠져 있어 걱정이라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고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게임을 정규 교과목으로 만드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게임에 관한 책을 읽게 하고, 게임을 직접 만들게 하고, 게임에 관해 시험을 보고, 정해진 기준만큼 스코어를 못 받으면 낙제를 시키는 거죠. 그러면 아이들이 게임으로부터 멀어질 겁니다. 어떤 즐거운 것도 학교 공부처럼 시키면 무조건 싫어하게 돼 있어요. 강제와 과잉이 거부를 낳는 거죠. 하지 말라고 하면 아이들은 훨씬 더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게임에 빠져드는 겁니다.
아이가 게임에 빠져 있다는 것은 게임 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를 보면 ‘에고, 내가 우리 아이를 게임 외에는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로 키웠구나!’하면서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려 애쓸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은 아이들이 학교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손쉬운 즐거움이거든요. 운동을 즐기고 음악이나 미술 등 다양한 예술 활동에 관심 있는 아이일수록 게임에 중독될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p124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혼자 노는 사람인가, 아니면 같이 노는 사람인가?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내가 어떻게 일할 때 가장 행복한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혼자 노는 게 즐거운지 함께 너는 게 즐거운지, 현실에서 놀 때 즐거운지 온라인상에서 놀 때 즐거운지, 나는 몸을 움직이면서 노는 사람인지 두뇌의 유희를 즐기는 사람인지, 이성적인지 감성적인지 말이지요.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이 질문에 정말로 답하고 싶다면, 일만 들여다보지 말고 놀이에서 해답을 찾아보세요. 일과 놀이를 함께 성찰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p144
새로고침은 왜 어려울까요? 인생에서 리셋은 왜 힘든 걸까요? 이유는 매우 자명합니다. 새로고침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삶이 굉장히 맘에 안 들어요. 맘에 안 드는 부분을 바꿔서 마음에 드는 삶으로 갔을 때 얻게 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을 얻기 위해 여러분이 노력해야 하고 그만큼 힘을 쏟아야 하는데, 그 정도의 힘과 에너지를 소비할 마음이 없다는 겁니다. 굳이 새로고침을 할 절박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는 거예요. 새해 결심은 왜 늘 실패하냐고요? 내년에도 새해는 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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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겁니다. ‘내가 지금처럼 10년 살아봤더니 이 삶이 주는 즐거움이 뭔지 충분히 알겠어. 그럼 이제 새로운 삶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해볼까?’하는 설렘으로 새로고침을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 우리 뇌는 습관이라는 틀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디자인돼 있지만, 새로운 목표를 즐겁게 추구하도록 디자인돼 있기도 합니다. 어느 뇌 영역을 사용할 것인지는 이제 여러분이 선택하시면 됩니다.
p164 오호..
또 하나가 손금이에요. 손금은 태아가 자궁 내에 있을 때 손을 어떻게 쥐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데요,
p170 <왜 미신을 믿는가?>
다시 말해 결과에 대한 기대는 높은데 미래에 대한 통제권이 약할수록 우리는 그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무 상관도 없는 인과관계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모든 환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거나 지속적으로 행운이 따라준다면, 인간은 결코 미신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p176
우리 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뇌 전역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이 화학물질은 전대상피질이라 불리는 뇌 영역에서 아주 흥미로운 역할을 합니다. 바로 무작위적인 패턴 사이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역할이지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뱀을 발견하는 능력, 사막의 모래언덕 사이에서 도마뱀을 찾아내는 능력, 숲속에서 군복 입은 군인을 찾아내는 능력은 이곳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전대상피질에 도파민이 부족하면 패턴을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제 2종 오류를 범할 확률, 패턴이 있는데 보지 못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뱀이 바로 앞 풀숲 사이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도파민 분비가 적절하면 패턴을 잘 찾을 뿐 아니라 창의적으로 패턴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복잡한 패턴 사이에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발견하는 창의적인 예술가 혹은 과학자는 전대상피질의 도파민이 제구실을 잘하는 분들인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곳의 도파민 분비가 지나치면, 무작위적인 패턴에서도 쉽게 특정 패턴을 ‘만들어’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 코카인이라는 마약은 도파민 상승제 역할을 하는데, 코카인을 섭취하면 없던 패턴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현증 환자처럼 도파민 분비가 과도한 경우에는 환청, 환상, 강박 등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듣거나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 분들에게 도파민 억제제를 투여하면 증세가 완화됩니다. 아직 진실은 잘 모르지만, 미신을 쉽게 믿는 분들의 뇌에선 전대상피질의 도파민 분비가 지나칠 수 있습니다.
p179
이 실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뭘까요?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는 겁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고요, 이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기대감이 사라진 상황에선 어떤 것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월급날 월급이 들어올 때보다 지금 강연장을 나가다 복도에서 5만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 더 기쁜 것처럼,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자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p182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뭐든지 의심하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상식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래서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생각들이 똑같이 타당하다면 여러분은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타당서을 갖지 못할 것이겠기에 말입니다.“
by 칼 세이건, ‘회의주의가 짊어진 부담’, 패서디나 강연 1987
**p200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그것을 ‘은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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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지더라는 겁니다. 전두엽과 후두엽이,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는 거죠.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평소 연결되지 않는, 멀리 떨어져 있는 영역끼리 신호를 주고받고 연결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건 연구자들의 해석입니다만, 어떤 문제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거나, 상관없는 개념들을 서로 연결하고, 추상적인 두 개념을 잇는 일이 그들의 뇌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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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글을 쓸 때 비슷한 원리를 사용합니다. 만약 DNA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면 DNA에 관한 책들은 별로 뒤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학 서적을 뒤적거리죠. 그런데 그곳에서 DNA를 설명할 수 있는 절묘한 예제나 비유를 찾게 되면, 그때부터 글이 저절로 술술 풀립니다. DNA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린다면, 기존의 글들과 유사한 글이 나오겠지요.
p231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부족한 부분을 지금은 빅데이터가 잘 보완해 주고 있기 때문에, 산업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그 분야에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느냐의 핵심은 그 분야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제4차 산업혁명이 늦게 올 거라는 예측도 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플랫폼 사업도 없고, 개인정보에 관한 규제가 엄격합니다. 개인이 누군지 식별할 수 있는 태그를 떼어도 데이터를 분석할 수 없습니다.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데이터라도 여러 개를 합치면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원칙적으로 막겠다는 겁니다. 미국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내용을 빼면 원칙적으로 마음껏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식별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엄벌에 처합니다. 덕분에 한국에 비해 데이터 분석은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범죄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우리는 범죄가 일어날까 봐 데이터 분석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니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보안기술 모두 발전이 더디죠.
p236
예전에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대뇌 안쪽 측두엽 근처 해마라는 영역을 많이 사용했을 겁니다. 이 영역이 발달하면 머리가 좋은 사람 취급을 받았겠지요. 그런데 현대사회에 와서는 전두엽, 즉 정보를 빠르게 스캐닝하고 필요한 정보가 뭔지 찾아서 결합하고 신속하게 맥락을 이해하는 영역을 더 많이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뇌를 쓰는 방식이 바뀌면 뇌 구조도 달라집니다. 이것을 뇌 가소성이라고 부릅니다. 뇌 구조가 바뀌어야 새로운 기능이 더해질 수 있으니까요. 새로운 사고방식, 검색과 편집, 정보의 결합, 빠른 스킨을 위해서는 그에 적절하게 뇌 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p247
스마트폰에 접속하는 순간, 친구들과 함께하던 현실 세계의 시간은 잠시 멈춥니다. 각자 비트 세계로 들어가 네이버나 구글 검색을 한 후에 답을 가지고 현실 세계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기기들을 엔지니어들은 ‘일상 단절 기기(just-a-moment devices)라고 부릅니다. “나 잠깐만 비트 세계로 들어갔다 올게”하는 거죠. 지금은 대부분의 스마트기기가 일상 단절 기기입니다만, 우리가 현실 세계에 살면서도 단절 없이 비트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미디어를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느낄겁니다. 이런 기술을 ’일상몰입 기술(life-immersive technology 혹은 seamless technology)이라고 부릅니다.
p250
일상몰입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기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런 기기가 실현 가능해지려면,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사용자 주변의 아톰 세계(atom world, 실제 시공간을 점유하는 현실 세상)에 대한 정보들을 모두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로 보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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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의 일치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과 유통업의 혁신’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방금 말씀드렸는데요, 여기에는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s)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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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뇌공학적인 관점에서 예측해보자면, 사실 손목에서는 사용자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거나 제공하기가 어려워서 손목시게 타입 웨어러블 기기는 헬스케어 외에는 딱히 쓰임새가 없습니다. 인간은 눈과 귀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뇌를 통해 그것을 처리합니다. 입을 통해 명령을 내리고요. 따라서 인간에게 유용한 고등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고등한 정보처리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두피에서 뇌파를 측정한다거나, 눈과 귀, 입 근처에서 인터페이스를 해야 합니다. 즉 머리에 가깝게 스마트기기가 붙어 있어야 해줄 수 있는게 많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구글이 한때 시도했다가 지금은 잠시 중단한 안경 타입 웨어러블 기기(google glass)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우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278
제가 가장 신뢰하는 아날로그 반격에 대한 기원 가설은 ‘뇌와 몸의 균형’을 향한 갈구입니다. 디지털은 뇌만 자극하지만, 아날로그는 몸도 자극합니다. 디지털 문명 세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뇌는 지나치게 많은 자극을 받는 반면 몸을 쓰고 반응하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뇌가 그것을 해석하고 결정하면, 다시 몸이 세상에 적용하는 일상적 경험을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p297
여러분이 존경하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쏟아냈던 어록도 가만히 되새겨보세요. 일례로, 그가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들려준 연설 중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이 경구는 1974년 잠시 폐간한 <홀 어스 카탈로그>의 폐간호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문구였습니다. 다시 말해, 잡스는 젊은 시절 그가 히피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려 했던 겁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주를 깜짝 놀라게 하고(dent in the universe!),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태도를 다음 세대도 지녔으면 했던 겁니다.
애플을 만든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구글의 에릭 슈미트, 래리 페이지, 세로게이 브린, 위키피디아의 웨일스, 그들은 모두 <홀 어스 카탈로그>의 열렬한 애독자였으며, 히피 정신을 테크놀로지로 구현해보고 싶어 했던 브랜드의 정신적 추종자들이었습니다. 혁명은 이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p303
실제로 실리콘밸리는 그런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제조업에서는 제품을 설계하는 단계가 필수적인데, 기발한 아이디어는 있지만 제품 설계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제품 모델이나 유사 제품에 대해 사진을 찍어요. 이를 ‘리얼리티 캡쳐’라고 하는데, 그러면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 사진으로 설계도를 만들어줍니다. 전자회로를 만들 줄 모르더라도 아두이노, 라즈베리 파이 등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이용하면 전자회로를 제품 안에 넣을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이나 메탈을 깎기 위해서는 밀링머신이 필요하고, 뭔가를 제조해야 한다면 3D 프린터가 필요하지만, 모두 데스크탑 버전이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책상 위에 작은 공장을 하나 만드는 일이 이제는 어렵지 않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회사를 차릴 자본금이 부족하면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 스타터’에 올려 집단 투자로 제품을 만들 자본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경우 아이디어만 좋으면 성공할 확률, 즉 자본금을 원하는 만큼 투자받을 확률이 50퍼센트가 넘습니다. 경영학을 제대로 배운 적 없고 법인 설립과정이나 회계 같은 것 전혀 모른다 해도 ‘와이 컴비네이터’같은 스타트업 교육센터에서 무료로 가르쳐줍니다. 다시 말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책상 위 공장을 짓고 아이디어를 실현해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겁니다. 실리콘밸리에 왜 스타트업 열풍이 부는지 이제 이해가 되시죠?
p338
우선 대뇌피질의 단어 지도를 살펴보니, 사람마다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단어군이 있더라는 신기한 현상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단어가 여러 뇌 영역에 저장돼 있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유사한 개념의 단어들을 덩이로 저장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단어를 머릿속에 저장할 때 유사한 개념의 단어들은 서로 가까운 영역에 저장하더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글을 읽을 때 효율적으로 문장들을 처리할 수 있겠죠. 별로 상관없는 개념들의 단어들은 멀리 떨어져 저장해놓았고요. 저도 단어들을 카테고리별로 저장할 거라고 추측은 했습니다만, 이렇게 간명하게 보여준 연구는 처음이었습니다.
p343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왜 퍼스트 펭귄 같은 스타트업이 잘 나오는 걸까요? 그들은 왜 글로벌 무대를 바탕으로 그토록 위험한 ‘세계 최초의 시도’에 과감한 걸까요? 그들은 우리보다 본질적으로 창의적인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제일 먼저 뛰어들어 실패하는 경험이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됩니다. 스타트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해본 경험이 대기업에 취어한 경험 못지않게 좋은 경력으로 인정받습니다. 게다가 나이 제한도 없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여러 번 실패해야 결국 성공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p336 by 정재승
왜냐하면 과학은 제게도 어렵거든요. 과학의 대중화라는 명목하에 과학을 쉽고 재미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며, 그 어려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누구나 다 과학을 잘하기는 힘들다’는 걸 모두가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힘겨운 과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존중하고 격려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과학자로서 여러분과 과학에 대해 대화하려는 이유는 과학의 대중화 때문이 아닙니다. 과학은 무척 어렵지만, 수식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개념의 바다를 넘어 결국 도다라게 되는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은 어려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인류 모두가 맛보아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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